가을여행.2_진안 마이산/무주리조트/장수논개생가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과 곤도라를 이용해 오른 덕유산을 지나..

임진호 | 기사입력 2006/10/02 [17:07]

가을여행.2_진안 마이산/무주리조트/장수논개생가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과 곤도라를 이용해 오른 덕유산을 지나..

임진호 | 입력 : 2006/10/02 [17:07]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과 곤도라를 이용해 오른 덕유산을 지나 아픈 역사의 장수논개생가까지...
 
 ▲  덕유산 국립공원     © 임진호


9월 30일 토요일 아침. 예정대로 버스는 제 시각에 도착해 있었다. 익산을 거쳐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는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을 향했다. 지난주와는 다르게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비교적 이른 시각에 마이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이 관광객들에게 주어졌고 나를 포함한 다른 관광객들도 비교적 넉넉한 자유시간에 흡족해 하는 분위기였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기고 슬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얼마 지나지 않자 말의 모습과 함께 사진을 찍어드린다는 광고문구를 볼 수 있었다. 원래 마이산이란 이름이 '말의 귀를 닮았다'해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여러장의 사진이 표지판 위에 걸려있었다. 교복을 입고 말 위에 오른 여학생의 사진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의 모습까지. 평소 쉽게 접해볼 수 없는 동물이다 보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 했다.
 
지난 번 찾았던 강천산과는 달리 마이산은 아스팔트가 탑사가 위치한 곳 까지 잘 깔려있었다. 이에 근처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분께 여쭈어 보았더니, 예전에 원할한 차량의 소통을 위해 깔아 놓았지만 지금은 차량통제를 한단다. 많은 인구가 저마다 차 한 대씩을 가지고 있는 지금 시대에 차량 통제를 하지 않으면 주차장이 모자라 교통혼란이 일어난다는 것. 간단히 목을 축일만 한 것을 사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얼마 오르지 않았을 때 환한 황금빛 사찰을 볼 수 있었다. 마이산 금당사.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건물전체가 금박이 입혀져 이 옆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눈길을 떼지 못 하고 자꾸만 금당사로 향하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했다. 화려한 금당사를 지나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약 1.6킬로미터를 걸어서 올라가니 그 유명한 마이산의 탑사가 보였다. 탑사를 세우셨다는 이갑룡 처사의 영정 그림과 미니어쳐 피규어도 눈에 띄었다. 1백여년 동안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모진 비바람과 태풍에도 끄떡이 없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핸드폰을 꺼내어 시계를 보니 내려가면 버스가 출발할 시각이었다.
 
대충 촬영을 마무리 짓고 등산객들이 붐비는 마이산을 뒤로한채 버스로 향했다. 다음 도착 예정지는 무주 덕유산(무주리조트). 관광 곤도라를 이용하여 산 정상까지 비교적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란다. 약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무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카메라를 챙겨서 매표소로 향했다. 곤도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오랫만에 타는 것이라 그런지 솔직히 조금은 무서웠다. 15분간의 비행아닌 비행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정상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정상에 있는 레스토랑에는 야외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테라스에 테이블들이 위치해 있었다. 운치있게도 그 옆에는 여러 나무들이 펼쳐져 있었고, 곳곳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 당겼다. 하늘과 맞닿아있는 곳. 이 곳을 직접 보지 않고는 느껴볼 수 없는 신비함을 가져다 주었다. 말이 필요없는 최상의 경치를 카메라 속에 담기엔 자연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커 보이기만 했다.
 
산 정상을 왔다 갔다하며 계속해서 펼쳐지는 내 앞의 천국을 담아댔다. 그렇게도 많은 시간 정상에 있었지만 곤도라를 이용해 산을 내려올 때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바로 아래서 더 오래 자연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오늘 둘러볼 마지막 장소는 장수의 논개생가다. 운행거리가 굉장히 긴 코스라며 약 400킬로미터(오늘 하루 동안의 운행거리가) 정도 된다는 기사님의 설명이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계시던 문화재 해설사 선생님께서 빠른 속도로 설명 해주시기 시작했다.
 
논개생가는 전북권에 거주하는 모든이들에게 일제 탄압의 아픈 역사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란다. 왜놈들의 침략 속에서 여인네의 가련한 몸으로 적장을 품은채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의암 주논개. 후손이 없어 부모님의 묘소를 돌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장수군민들이 논개생가 안에 뜻을 세워 논개의 부모 묘소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논개생가는 단순히 논개의 동상과 머물렀던 거처만 꾸며놓은 장소가 아니었다. 의암 주논개의 절기와 우리의 민족혼이 잘 살아있는 교육의 공간이었다. 많은 동행인들은 설명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이겨내며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는 분위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이번 여행길. 오늘도 여행은 단순히 오락거리가 아님을, 언제나 교훈과 함께 한다는 것을 나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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