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현대적인 빌딩이 늘어선 종로 한복판, 두터운 돌담을 경계로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간직한 곳이 있다. 조선 후기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지였던 운현궁이다. 5월의 햇살 아래 한옥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봄빛은 이곳 특유의 고결한 기품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흥선대원군의 사저이자 고종 황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운현궁은 일반적인 사대부 집안에서 보기 힘든 웅장한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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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 거처였던 운현궁 사랑채 노안당 _ 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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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노안당과 안채인 노락당으로 이어지는 건축미는 궁궐에 버금가는 정수를 보여주며 겹겹이 층을 이룬 기와지붕은 중후한 멋을 자아낸다. 한때 궁궐에 비견될 만큼 거대했던 규모는 세월을 거치며 축소되었으나 그 안에 담긴 왕실의 권위와 역사적 무게감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운현궁의 진정한 매력은 담장 하나를 두고 분주한 도심과 분리된 고요함에 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꽃향기 섞인 봄바람을 맞으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특히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이 찾아와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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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 안채 이로당, 뒤에 운현궁 양관 건물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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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듣고 기와 끝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며 즐기는 짧은 휴식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옥 마당 너머 나지막한 언덕 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인 운현궁 양관이 펼쳐진다. 1912년경 일제가 황실 인사를 회유할 목적으로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으로 아치형 외관과 베란다가 화려하지만 외벽에 새겨진 이화 문양은 이곳이 조선 왕실의 공간이었음을 증언한다.
그동안 운현궁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2026년 아이유와 변우석 주연의 21세기 대군부인을 비롯해 과거 드라마 궁에서 주지훈이 살던 동궁의 서양식 건물로 등장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각시탈, 더킹 투하츠 그리고 공유가 출연한 도깨비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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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 노안당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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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양관은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내에 위치해 담장 밖에서 외관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활용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해설관광사업을 운영한다. 운현궁에서 시작해 북촌한옥마을과 백인제 가옥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운현궁에서 울려 퍼지던 우리 소리의 맥락은 지척에 자리한 서울우리소리박물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진 박물관에는 농부의 노랫소리와 어부의 뱃노래 등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향토 민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치된 헤드셋을 통해 구성진 노랫가락을 감상하다 보면 민요가 낯선 세대도 자연스럽게 우리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5월의 종로는 이처럼 운현궁의 고요한 건축미와 박물관의 정겨운 소리가 어우러져 도심 속 가장 완벽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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