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 장건섭 시인의 폭식(暴食)

폭식하는 자화상을 통해 시인은 부부관계에서의 소외가 갖는 의미를 메시지로 치환

강성현 | 기사입력 2021/01/12 [01:01]

[詩의 향기] 장건섭 시인의 폭식(暴食)

폭식하는 자화상을 통해 시인은 부부관계에서의 소외가 갖는 의미를 메시지로 치환

강성현 | 입력 : 2021/01/12 [01:01]

[이트레블뉴스=강성현 기자]

장건섭 시인의 '폭식(暴食)'

폭식(暴食)

- 장건섭 시인

아내가
단 하루만 집을 비워도
나는 폭식(暴食)을 한다
아내의
그 빈자리가 허전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고 또 먹고
또 먹을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끝내
나는
혼자
밤새 배앓이를 한다

아내가 집을 비운 것은
단 하루뿐인데도
언제나 비좁기만 하던 집 전체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만큼이나
넓어 보인다

오늘도 아내는,
간밤에 전라도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는
텔레비전 아침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눈(雪)이 보고 싶다며
엄마가 보고 싶다며
아침 설거지도 뒤로 미룬 채
허둥
허둥대기 시작한다

아내는,
정말
눈이 보고 싶은 것일까?
정말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혹시,
고향의 눈 소식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떠올려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는,
결국 저녁노을이 질 무렵
고향 가는
기차역을 향해
집을 나섰다

아내를 실은
기차는
저녁노을과 함께 지나가는데
서울에도
아내에게 그리움을 주는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밤도 폭식을 한다.

 


[감상] 
권대근(문학평론가/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상의 부재를 통한 주체의 소멸의식이 방향성을 잃은 허무의식으로 귀결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적 화자의 사회 병리학적 관점이 시상을 통해 잘 드러난 것은 아닐까.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거대담론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외와 단절로 대표되는 현대적 상황을 시인이 시로 수용한 것이 아닐까싶다. 평자의 곁으로 온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박수로 맞는다.

삶의 아픔이나 얼룩이 그대로 묻어나는 생활서정을 표출하여 공감의 폭을 넓힌 의도에는 폭식이란 비정상적 행위를 통해 시적 화자는 아내의 부재가 갖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확산해 나가고자 한다.

이런 약간의 고발적이고 고백적인 시적 전개 때문에 이 시는 안타까운 분위기도 주고 동시에 시적 화자에 대한 귀여운 느낌도 갖게 한다.

아내의 부재가 남긴 허전한 그림자를 지워내기 위해 폭식을 해대는 시적 화자의 언술을 통해 이 시는 삭막한 땅 위에 고독한 존재자로서 설 수밖에 없는 여성상위시대 남편의 쓸쓸한 심사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어 감동을 준다.

단절과 소외의 현대 사회에서 차츰차츰 여성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나가는 남편의 입장이 구체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고 단절과 소외의 현대 사회에서 차츰차츰 여성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나가는 남편의 입장이 구체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시적 화자를 유아적으로 몰고 가는 아내의 부재 상황을 현란한 언어구사 없이 능숙하게 폭식 이미지로 환치해 낸 뛰어난 작품인 이 시는 수월하게 읽히면서도 삶 속에 내재된 한 남자의 비애와 애환이 잘 갈무리되어 있어서 공감을 준다.

작은 세상에 대한 우울한 삶을 접근성이 강한 당돌한 묘사로 섬세하게 천착해내었을 뿐만 아니라 소외를 병리학적으로 진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부재, 소외, 단절 등 우리 사회와 가정에 미치는 현대적 특성을 의문과 상상력을 연계해서 풀어내어 보라고 독자에게 던지는 화두 같은 이 시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적 삶에 대한 투시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폭식하는 자화상을 통해 시인은 부부관계에서의 소외가 갖는 의미를 메시지로 치환하고 있다.

'나는 폭식을 한다'와 '나는 오늘 밤도 폭식을 한다'의 수미상관적 구성 방식에서 보듯 시인은 끝까지 자기의 소외된 상황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아내가 없으면 여전히 불안하다는 시적 화자의 내부 독백과 엇박자를 내는 아내의 낭만성과 모성성이 남자의 목소리보다 더 힘을 갖는 현실에서 시적 화자의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자괴가 엄연한 삶의 진실임을 잘 일깨워준다.

외출 중인 아내의 부재가 몰고 오는 생존 현실의 비애를 담아낸 이 시는 삶의 무게에 침식당하는 남자의 모습을 타화화해서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 성찰이 매우 돋보이는 시라고 하겠다.



[장건섭(張建燮) 시인 프로필]

1958년 전북 익산 출생
1978년 <생명시> 시부문 신인작품상 수상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홍보분과위원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사)한국현대시인협회 한-베트남국제문학교류 위원장
(사)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서초문인협회 이사
은평인협회 이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작사)
한국기록문학가협회 이사
종합문예지 '서라벌문예' 및 '불교문학' 편집국장
저서 : 시집 '돌아서기', '단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의 序詩', '폭식' 외 다수
현재 미래일보 편집국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국내여행
강릉시, 대관령 어흘리 관광지 안내소 신축
1/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