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벙커에서 빛과 음악의 궁전으로, 서귀포 빛의벙커

듬성듬성 농가와 밭을 경계 짓는 돌담이 거듭해 지난다. 대수산봉 서쪽에 자리한

이성훈 | 기사입력 2021/11/29 [01:45]

어둠의 벙커에서 빛과 음악의 궁전으로, 서귀포 빛의벙커

듬성듬성 농가와 밭을 경계 짓는 돌담이 거듭해 지난다. 대수산봉 서쪽에 자리한

이성훈 | 입력 : 2021/11/29 [01:45]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대로를 벗어나자 차선도 없는 길이다. 듬성듬성 농가와 밭을 경계 짓는 돌담이 거듭해 지난다. 대수산봉 서쪽에 자리한 빛의벙커는 가는 길부터 그 의미를 짐작게 한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벙커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공간의 모양 때문이다.

▲ 요새를 연상케하는 빛의 벙커 입구

 

빛의벙커는 KT가 국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에 해당한다. 철근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1990년 완공했다.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벽 두께 3m에 이른다. 지붕은 두께 1.2m 위에 높이 1m 공간을 두고, 다시 1m를 올린 이중 구조다. 이를 가로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기둥 27개가 떠받쳐 요새나 다름없다.

 

▲ 좀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가장자리 의자 자리


센터 준공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했지만, 센터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듯했다. 건물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마치 산의 일부처럼 보이게 위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방호벽을 두르고, 이중 철조망과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한 뒤, 현역 군인이 통제했다. 인근에 사는 사람도 짓는 줄은 알았으나 완공된 줄은 모르는 건물이었다.

 

▲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즐기는 다양한 감상법


센터는 2000년대 초부터 용도 없이 방치되다 2012년 민간에 불하했고, 2015년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옛 센터의 사무실과 숙소동에 들어섰다. 종전 센터 벙커는 한동안 공연장과 행사장 등으로 쓰이다가, 2018년 11월에 빛의벙커가 문을 열었다.

 

▲ 작품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빛의벙커 전시


빛의벙커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이다. 빔 프로젝터 90대가 벽과 바닥 등에 영상을 투사해 명화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편집한 거장의 작품이 삼면을 장식하는 순간, ‘빛의벙커’라는 이름을 실감한다. 개관 기념 전시로 연 구스타프 클림트―색채의 향연과 2019년 빈센트 반 고흐―별이 빛나는 밤이 큰 인기를 끌며,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 빛의벙커를 장식하는 샤갈의 작품


현재는 르누아르와 모네, 샤갈, 클레 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전시한다. 파트Ⅰ ‘Voyages to Mediterranean(지중해로의 여행)’은 이상주의부터 모더니즘까지 6개 시퀀스에 작품 500여 점이 빛의벙커를 채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모네의 ‘수련’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샤갈의 ‘율리시스의 메시지’ 등 예술가 20인의 작품이 약 35분 동안 펼쳐진다.

▲ 빛의 벙커 파트1 전시 파트Ⅰ지중해로의 여행


파트Ⅱ는 파울 클레의 ‘Painting Music(음악을 그리다)’이다. 클레는 화가이자 음악가, 교사로 활동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곡과 클레의 작품이 10분 동안 공간을 채우는데, 스피커 69대를 설치해 귀도 눈 못지않게 즐겁다.

 

▲ 빛의 벙커 전시 감상 모습


빛의벙커 전시는 평면적인 회화 전시가 아니라, 거장의 작품을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다. 이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된다. 가장자리 의자는 벽에 등을 기댈 수 있어 편안하다. ‘불멍’이나 ‘물멍’을 하듯 작품을 감상하기 좋다. 물론 작품 바로 앞 바닥에 앉으면 몰입도가 올라간다. 바닥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따라 걸으며 감상할 수도 있다.

 

▲ 빛의벙커 아트샵 모습


전시장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전시 중인 작품을 한 장씩 보여주는 ‘ㄷ 자형’ 갤러리룸 등과 여러 개 벽이 공간을 구획해 단조롭지 않다. 입구나 열린 창이 프레임 역할을 해, 보는 방향에 따라 흥미로운 시선도 연출한다. 

 

▲ 전지 중인 작품을 평면 회화로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룸

 

시설의 면과 선을 교차하거나 겹치도록 촬영하면 색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전시와 전시 사이, 미디어 아트 작품이 사라지는 막간에 콘크리트 공간이 날것 그대로 보여, 잠시나마 옛 센터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 옛 센터의 사무실과 숙소동으로 쓰였던 커피박물관 바움

 

빛의벙커는 남쪽 입구와 북쪽 출구의 모습이 똑같다. 입체적인 사다리꼴로, 입구 위쪽은 수목이 무성해 공간을 위장한 흔적이 엿보인다. 벙커 옆에는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이 있다. 카페와 박물관이 공존하고, 창이 넓어 숲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좋다. 인근 바람의 숲이나 대수산봉 둘레길, 대수산봉 정상 등을 연계해 산책 삼아 걸을 만하다.

 

▲ 커피박물관 바움의 창밖 숲 풍경


빛의벙커 홈페이지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소설가 김영하와 뮤지컬 배우 카이가 들려주는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시를 좀 더 알차고 재밌게 경험하는 방법이다. 현재 전시는 2022년 2월 28일까지 열린다. 빛의벙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1만 8000원, 청소년 1만 3000원, 어린이 1만 원이다.

 

▲ 빛의벙커 앞 옛 방호벽


빛의벙커에서 가까운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잇는 해안으로, 썰물 때는 이끼 낀 빌레(너럭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암이 바다를 만나 굳으며 생겨난 지형이다.

 

▲ 광치기해변만의 독특한 풍경 빌레(너럭바위)

 

그 위를 걸어볼 수 있는데 성산일출봉까지 뻗어 나간 풍경이 장관이다. 광치기는 ‘광야처럼 넓다’라는 뜻이 있고, ‘관치기’라는 슬픈 이름도 있었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죽으면 파도에 시체가 밀려와 관을 짜서 묻었다고 한다. 광치기해변의 일출이 장엄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모습


본태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지은 건물이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잇는 동선이 미로처럼 이어져 연신 호기심을 자아낸다. 2관 2층 통로에서 보는 제주 남쪽 바다와 산방산, 단산, 모슬봉의 파노라마 풍경 역시 자연을 담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특징을 잘 드러낸다.

 

▲ 안도 다다오 건축 미학이 잘 드러나는 본태박물관

 

본태(本態)는 ‘본래 형태’를 뜻한다. 특히 한국 전통 공예품 전시가 돋보인다. 1관은 소반과 보자기 등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4관은 전통 상례와 관련된 꽃상여, 용수판, 용마루 꼭두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3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와 5관 제임스 터렐의 초기작 ‘단일 벽 투사’ 전시실은 공간을 체험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 본태박물관의 베갯모를 전시한 베개타원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제주의 활기를 느끼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서귀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근래에는 관광객에게 더 인기다. 아케이드 형태로 365일 열리는 시장인데, 제주의 특산물과 간식거리가 많다.

▲ 서귀포 대표 관광지로 자리잡은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다진 마늘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늘통닭, 김밥과 어묵, 떡볶이 등을 다 함께(모닥) 넣은 제주식 모둠 떡볶이인 모닥치기,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꽁치김밥 등이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흑돼지김치말이, 땅콩만두, 대게고로케, 감귤찹쌀떡 등은 근래 각광받는 메뉴. 삼시 세끼로 부족한 ‘먹부림’의 진수다.

 

▲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모닥치기

 

○ 당일여행 : 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서귀포매일올레시장

 

○ 1박 2일 여행 : 첫날_빛의벙커→제주커피박물관 바움→광치기해변→성산일출봉 / 둘째날_본태박물관→군산오름→서귀포매일올레시장

 

○ 관련 웹 사이트

 - 서귀포시 관광 www.seogwipo.go.kr/field/tourist.htm

 - 비짓제주 www.visitjeju.net

 - 빛의벙커 www.bunkerdelumieres.com

 -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www.jejubaum.com

 - 본태박물관 www.bontemuseum.com

 

○ 주변 볼거리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해녀의부엌, 용머리해안, 김녕금속공예벽화마을 / 관광공사_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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